<애도: 상실의 끝에서>

코로나19로 가족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전쟁으로 피난가는 사람들, 기후 위기로 인한 산불처럼 상실이라는 환경 속에서 모든 개인에게 일어나는 심리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승화의 과정을 추적해보고자 하는 전시이다. 전쟁의 경험, 삶의 터전을 잃는 경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등 다양한 상실의 상황에서 작가들은 이러한 상실을 어떻게 애도하고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승화시켰는지 결과물로서의 작품을 돌아본다.

<애도: 상실의 끝에서> 대표이미지
  • 기획전시
  • 기간 2022-06-30 ~ 2022-09-12
  • 장소 전남도립미술관
  • 작가김수자, 게르하르트 리히터, 낸 골딘, 닉 워커, 박영숙, 박정선, 빌 비올라, 샤피크 노르딘, 시프리앙 가이야르, 안젤름 키퍼, 유벅, 이재각, 잉카 쇼니바레
  • 작품수약 54여점
  • 관람료1,000원
  • 주최/후원전남도립미술관
소개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한 감염증과 수많은 사망자들, 기후 위기로 진화가 어려운 산불, 전쟁으로 설 곳을 잃은 사람들. 우리 모두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전남도립미술관은 우리를 관통하는 상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애도의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전시를 마련했다. 과거의 충격이 현재로 이어지는 트라우마의 경험은, 심리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승화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의 작품 또한 이러한 상실의 과정을 애도하고,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승화의 결과물이다.

 

  상실은 단지 누군가의 죽음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삶의 터전을 잃었을 때,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아로부터 분리되어 떠돌 때, 내가 이상화한 나의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이 일치하지 않을 때처럼 다양한 의미에서 우리는 상실을 겪는다. 애도: 상실의 끝에서역시 유년 시절의 기억과 멀어진 나, 살아가는 터전의 상실, 사랑하는 이의 상실 크게 세 개의 주제로 나뉜다. 이는 상실의 경험이 사람마다 다르게 일어나고, 그 고통의 지점에 따라 극복하는 방법도 다르다는 데에 착안한 것이다. 상실을 극복하는 방법은 상실을 겪는 사람의 무수한 과거 경험과 성격을 포함한다. 특히 이것이 시각예술로 표현되는 예술 작품의 경우에는 작품에 접근하는 작가의 방식에 따라서도 다르게 표현될 것이다.

 

  상실은 도처에 있다. 자식들이 성장해서 떠나가는 것, 부모님이 늙고 병들어 사라지는 것, 건강했던 내 몸이 조금씩 쇠퇴함을 느끼는 것,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는 것, 내가 동경하고 이상화했던 어떤 대상에 실망을 느끼는 일상적인 순간. 이것들은 모두 상실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애착을 가졌던 대상을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는 동시에 그에 대한 사랑과 추억을 영원히 간직한다. 이 과정을 애도(mourning)라고 부르고, 잃어버린 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애도의 과정은 아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무언가를 떠나보냄으로써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울 공간을 얻는다. 그래서 애도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상실과 애도라는 개념에는 수많은 정신분석학적, 심리학적인 해석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이론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자면, 상실을 상실로 흘려보내고 내 안에 남아있는 불안과 대면하는 것이 애도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 불안감과 두려움을 하나씩 극복해 나가는 것, 나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타인과의 연결감과 애착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 자유롭다는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상실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당신은 무엇을 잃었는가. 무엇에 애착을 가졌나. 무엇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나. 그것들이 떠난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졌나. 애도는 과거에 관한 일일까, 미래에 관한 일일까. 이러한 질문들의 해답을 찾을 수 없더라도 끊임없이 곱씹는 작가들의 결과물을 착실히 들여다보면서,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에는 희미한 느낌표가 생기기를 기대한다.

 

 

  김수자(KImsooja)

 김수자, 바늘 여인, 1999-2001, 라고스, 8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스틸컷, 633, Courtesy of Kimsooja Studio,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수자(1957~)는 대구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24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55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 특별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 작품을 전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는 서울, 뉴욕,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경험한 다양한 문화적인 것들을 자신의 작품에 엮어낸다. 이 모든 문화적인 특징을 묶어 만든 보따리 오브제는 김수자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이불보를 만들며 바느질을 하고 있을 때 온 우주적 에너지가 자신의 몸을 통과하여 바늘 끝에 모이는 느낌을 경험했다고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천과 바늘, 실을 이용해 꿰매는 작업을 통해서 작가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를 바라본다.

 

  <바늘 여인 1999~2001>은 바느질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 본인이 직접 세상 속의 다양한 타인을 연결하는 바늘이 되기를 자처함을 보여주는 8채널 영상작품이다. 보따리라는 오브제 작업이 영상 작업으로 확대된 셈이다. 작가는 도쿄, 상하이, 델리, 뉴욕, 멕시코시티, 카이로, 라고스, 런던 총 8개의 도시에서 진행된 퍼포먼스를 담았다. 수없이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서 작가는 긴 머리를 한 가닥으로 묶은 채 뒷모습을 보이고 서 있다. 다양한 지리적, 문화적, 정치적 특징 속에서 작가 본인은 바늘처럼 우뚝 서서 본인의 신체가 현실과 추상성을 연결하고, 물질과 비물질을 연결하기도 하면서 연결의 매개자가 된다.

 

  관람객은 정방형의 방 한가운데에서 각각의 도시를 스치는 군중들의 에너지를 강력하게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가 표현하는 바늘은 과연 무엇을 실과 직물처럼 꿰고자 하는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바늘 여인의 옆을 스쳐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개인의 시간과 기억을 축적하고 있는 실이다. 여러 도시를 배회하면서 그 도시에 익숙해지고, 또 떠나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 작가는 여러 기억을 얻고, 또 감정적으로 어떤 부분을 잃기도 했을 것이다. <바늘 여인>은 그의 곁을 통과하는 각기 다른 신체에 담긴 기억들이 상호교류하고 이어져 고유의 특징을 가진 도시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애착과 상실을 한 몸에 지닌 우리들 모두 이 우주의 일부인 셈이다.

 

 

  낸 골딘(Nan Goldin)

 낸 골딘, 자화상, 1995, 16마운티드 시바크롬, 87x133cm, 우양미술관 소장

 

  낸 골딘(1953~)은 미국의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는데, 골딘의 사진들은 대부분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소수자, 약물 중독자 같은 80년대의 미국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건조한 시선으로 담아낸 것들이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그의 사진들은 그 때 당시 아주 사적인 일기를 대중화한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DC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과 함께 했던 골딘의 사진 속 인물들은 세밀하고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지독하게 외롭다. 피사체에 어떠한 감정을 섞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일상생활을 담아낸 그의 사진은 인간은 함께인 동시에 어쩔 도리 없이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낸은 실제로 11살 때 친언니의 자살로 큰 충격을 받고, 14살 때 가출을 감행한다. 16살 무렵부터는 여장 남자인 드랙퀸(Drag queen)들과 생활하며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언니의 죽음이라는 큰 상실을 마음에 안은 낸의 사진들은 자신의 아주 내밀한 감정과 연약해서 곧 부서질 것 같은 본인의 실제 생활들을 담아냈다. 작품 속에서 낸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고독하지 않으려 애쓰지도 않은 채 자신의 생활을 마주한다.

 

  그의 <자화상>에는 3년간 낸 본인과 사귀었던 연인 브라이언이 등장한다. 해가 지는 초저녁인 듯 오렌지빛으로 물든 방 안에서 낸과 브라이언은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한다. 물끄러미 브라이언을 보는 낸의 시선과는 다르게, 브라이언은 창밖을 보며 말없이 담배를 태우고 있다. 가장 친밀한 공간이어야 할 침대 위에서 둘은 대화나 애착이 부재한 상태로 각자만의 고독에 휩싸여있다. , 낸은 브라이언에게 맞아 피멍이 든 자신의 얼굴을 자화상으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기억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상흔을 있는 그대로 포착한 낸의 작품은 우리에게도 언젠가 있었을 법한 크고 작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안젤름 키퍼, 모겐소 플랜, 2019, 금박 위에 실버 젤라틴 에멀전, 캔버스 바인딩 된 카드보드 36페이지, 55x53x4.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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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은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 보다 광범위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세상의 흉터와 삶의 상처를 품어내야 한다.”

 

  안젤름 키퍼(1945~)는 독일에서 태어나 칼스루에,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키퍼의 작업은 많은 역사를 가진 독일인으로서의 문화적 기억과 정체성 같은 다층적인 주제를 포함한다. 특히 그의 작업은 유리, , 나무 같은 일시적이고 쉽게 부서지는 재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는 자기 작업의 유한성과 덧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재료를 사용했다. 그의 작품들에서 대지는 역사의 상처를 흉터로 간직하고 있고, 폐허가 되어버린 풍경은 나치 시대 독일의 문화유산을 나타낸다. 이처럼 키퍼가 작품을 통해 드러내는 것은 모든 사회가 경험하는 외상(外傷),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탄생하는 생명과 쇄신이다.

 

  <모겐소 플랜(Morgenthau Plan)>1944년 제2차 퀘백회담에서 미국의 재무부 장관이었던 헨리 모겐소 주니어가 제안한 계획으로, 전범국가인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독일의 군수산업 외 모든 기초 공업시설을 해체해 비무장화 하고, 농업국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유럽 내부와 프랑스의 격렬한 반대로 결국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키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독일 대신 아름답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농업국가로써의 독일을 상상했던 듯하다. 그는 2012년 영국의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에서 동일한 제목으로 전시를 열었는데, 여기서는 5m의 철제 케이지 안에 황금 밀밭의 조각들이 가득 찬 형태로 작품이 전시되었다. 본 전시에 출품된 작품은 이것을 카드보드에 그려 책으로 만든 것으로, 실제 밀밭 대신 종이 위에 금박과 실버 젤라틴 에멀전을 이용해 36페이지로 엮은 것이다. 카드보드를 가득 메운 밀밭의 전경과 밀이 넘실대는 풍경은,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상실 이후를 딛고 일어나는 새로운 생명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

  잉카 쇼니바레, 케이크 키드, 2014, 대구미술관 소장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 1962~)는 영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나이지리아계 영국인이다. 아프리카의 식민적 투쟁은 착취와 차별의 역사 속에서 진행되어왔고,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영국과 그 제국주의 및 식민성의 혼재는 의미심장하다.

  

  그는 1962년 런던에서 태어나 세 살이 되던 해에 가족들과 함께 나이지리아의 라고스(Lagos)로 이주해 살다가, 16살에 다시 변호사인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돌아와 예술을 공부했다. 영국과 나이지리아를 오가며 만들어진 그의 정체성은 스스로를 탈식민주의의 혼종(hybrid)라고 인식하게끔 했다. 이렇게 형성된 그의 시각은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서양인들의 일상에 녹아있는 유럽중심주의, 인종차별적 요소들에 질문을 던진다. 그가 사회에 던지는 질문들은 외국인으로서 백인 사회에서 성장한 그가 잃어온 것들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해학적이고 풍부한 컬러감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작품 속의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의 직물은 아프리카 전통의상인 더치 왁스. 쇼니바레는 아프리카 전통의상으로 알려진 천이 사실은 인도네시아의 전통 면직물인 바틱(batik)에서 유래한 것이었으며, 이것이 19세기에 서구 열강들에 의해 중서부 아프리카로 옮겨간 것임을 알고나서 자신이 믿어온 조국의 문화 역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산물임을 마음 아프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함의를 지니는 옷을 입은 조각상은 아프리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승자의 역사가 쓰여질 때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는 사실을 에둘러 보여준다.

 

  쇼니바레의 작품을 읽을 때 혼종성이중성이라는 두 가지의 키워드는 필수적이다. 자신이 살아온 문화의 혼종성, 그리고 역사 속 강자와 약자에 대한 시각의 이중성. 쇼니바레는 이처럼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배척되어 온 자기 자신과 국가의 역사를 직면하면서도, 다음 세대가 걸어갈 길은 아름답고 찬란한 길이기를 소망한다.

 

작가
김수자, 게르하르트 리히터, 낸 골딘, 닉 워커, 박영숙, 박정선, 빌 비올라, 샤피크 노르딘, 시프리앙 가이야르, 안젤름 키퍼, 유벅, 이재각, 잉카 쇼니바레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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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리앙 가이야르, 가상 전쟁의 실제 잔재 IV, 2004, 35mm 필름비디오, 컬러, 무음, 4분 15초, 스프루스 마거스 소장, Copyright Cyprien Gaillard, Courtesy the artist, Sprüth Ma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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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 미친년 프로젝트 - 갇힌 몸 정처없는 마음 #1, 2002, 디지털 C-프린트, 120x120cm, 아라리오 뮤지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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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 미친년 프로젝트 - 꽃이 그녀를 흔들다 #14, 2005, 디지털 C-프린트, 120x120cm, 아라리오 뮤지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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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름 키퍼, 모겐소 플랜, 2019, 금박 위에 실버 젤라틴 에멀전, 캔버스 바인딩된 카드보드 36페이지, 55x53x4.5cm, CNCITY마음에너지재단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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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비올라, 트리스탄의 승천(폭포 아래 산의 소리), 2005, 비디오/사운드 설치, 사진: 키라 페로브(Kira Perov) ©빌 비올라 스튜디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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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비올라, 불의 여인, 2005, 비디오/사운드 설치, 사진: 키라 페로브(Kira Perov) ©빌 비올라 스튜디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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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바늘 여인, 1999-2001, 라고스, 8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스틸컷, 6분 33초, Courtesy of Kimsooja Studio,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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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골딘, 자화상, 1995, 16마운티드 시바크롬, 87x133cm, 우양미술관 소장

<애도: 상실의 끝에서> 첨부 이미지

안젤름 키퍼, 모겐소 플랜, 2019, 금박 위에 실버 젤라틴 에멀전, 캔버스 바인딩 된 카드보드 36페이지, 55x53x4.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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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쇼니바레, 케이크 키드, 2014, 대구미술관 소장, ⓒ Yinka Shonibare MBE. All Rights Reserved, DACS-SACK, Seoul,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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